피터 팬은 왜 웬디와 함께 자라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예전처럼 웃다가도,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피터와 웬디 사이의 거리는 훨씬 크지만, 함께한 시간을 같은 방식으로 이어갈 수 없다는 아쉬움은 낯설지 않다.
피터는 웬디가 곁에 있기를 바라면서도 함께 자라는 삶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원작 『피터와 웬디』에서 그가 웬디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을 돌봐줄 ‘엄마’의 자리다. 자신은 계속 아이로 남으려 하므로, 웬디가 원하는 관계와 피터가 원하는 관계가 어긋난다.
그 차이는 웬디가 자신에 대한 감정을 묻는 장면에 드러난다. 피터는 다정한 아들의 마음이라고 답한다. 달링 부인이 가족으로 받아주겠다고 했을 때에도 학교와 직장을 거쳐 어른이 된다는 말을 듣고 거절한다.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미래를 살겠다는 선택은 피터에게 같은 일이 아니다.
제임스 매슈 배리의 1911년 소설 『피터와 웬디』를 따라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부터 웬디가 자란 뒤까지 살펴본다. 주요 장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다.
피터 팬은 이야기의 결말을 들으러 왔다
피터가 달링가의 아이들 방에 찾아오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야기다. 창밖에서 달링 부인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듣다가 끝을 놓쳤다. 웬디가 결말을 알려주고 다른 이야기도 많이 안다고 하자, 피터는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들려달라며 함께 가자고 권한다.
설득은 곧 돌봄의 약속으로 넓어진다. 피터는 웬디가 밤마다 아이들을 재우고, 옷을 기우며, 주머니도 만들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네버랜드에 도착해서도 웬디를 소개하는 말은 자신이 마침내 아이들의 엄마를 데려왔다는 것이다.
웬디에게도 가고 싶은 까닭이 있다. 날아가는 모험과 인어를 볼 기회가 기다리고, 자신이 좋은 엄마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생긴다. 네버랜드에 도착한 웬디는 취침 시간과 생활 규칙을 정하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라는 호칭은 웬디를 중요한 사람으로 만든다. 동시에 바느질과 간호, 훈육을 그의 몫으로 묶는다. 피터가 모험으로 채우는 시간에 웬디는 집을 돌본다. 둘 다 어린아이인데 맡은 역할은 점점 달라진다.
웬디가 원한 관계와 피터가 이해한 관계
두 사람의 차이는 네버랜드의 지하 집에서 나누는 대화에 직접 나타난다. 웬디와 피터는 아이들의 엄마와 아버지 역할을 놀이처럼 맡는다. 그러나 피터는 자신이 진짜 아버지처럼 보일까 불안해하고, 모두 꾸며낸 설정일 뿐이라는 확인을 받은 뒤 안도한다.
이어서 웬디가 자신에 대한 정확한 감정을 묻자 피터는 헌신적인 아들의 마음이라고 답한다. 웬디는 예상했다는 듯 물러나지만 실망을 감추지는 못한다. 타이거 릴리 역시 자신의 엄마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는 말을 피터는 이해하지 못한다.
피터에게 애정이 있다는 흔적은 다른 장면에도 남는다. 웬디를 돌려보내기 싫어 창문을 잠글 때 자신도 웬디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훗날 어른이 된 웬디를 보고는 운다. 다만 그 마음은 웬디가 바라는 형태의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
피터에게 가까움은 함께 놀고, 이야기를 듣고, 필요할 때 다시 찾아갈 수 있는 상태다. 웬디에게 가까움은 상대와 함께 시간이 흐르고 그동안의 일을 서로 기억하는 관계로 변해간다. 누가 더 진심인가를 가르기보다, 두 사람이 관계를 지속하는 방식 자체를 다르게 이해한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모험은 계속되는데 기억은 남지 않는다
피터의 망각은 원작에서 반복된다. 네버랜드로 가는 비행 중 일행에게 돌아왔을 때에도 한 번은 웬디의 이름을 다시 들어야 한다.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한 뒤 한 해가 지나도, 피터에게 그 시간은 어제처럼 느껴진다. 다음 해에는 아예 찾아오지 않고, 웬디는 기다리다 자신이 잊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변하지 않는 아이는 흔히 자유와 순수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피터와 웬디』는 그 상태의 대가도 보여준다. 경험이 쌓여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려면 이전의 일을 기억하고, 그 기억에 따라 다음 선택이 달라져야 한다. 피터에게 모험은 계속 일어나지만 오래 축적되지 않는다. 후크와 팅커 벨의 일도 희미해지고, 함께했던 사람은 다음 놀이를 시작할 때 다시 필요한 역할로 돌아온다.
반대로 웬디는 자라면서 잃는 것과 얻는 것을 함께 경험한다. 더는 피터와 같은 방식으로 날 수 없고, 네버랜드의 모험에서도 멀어진다. 대신 아이였던 자신과 어른이 된 자신을 하나의 기억으로 연결하며, 피터와 보낸 시간을 딸 제인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 성장에는 모험의 끝이 있지만, 한때의 모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가능성도 있다.
열어준 창문, 함께 들어가지 않은 집
런던으로 돌아온 웬디와 잃어버린 아이들을 달링 부부는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달링 부인은 피터에게도 함께 살자고 한다. 피터는 학교에 가야 하는지, 나중에는 사무실에서 일하는지, 곧 남자가 되는지를 차례로 묻는다. 그렇다는 답을 듣자 누구도 자신을 붙잡아 어른으로 만들 수 없다며 물러난다.
그는 웬디와 아이들이 돌아오기 직전 창문을 잠가, 엄마가 아이들을 버린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 한다. 그러나 달링 부인의 눈물을 보고 결국 창문을 다시 연다. 피터는 웬디를 붙잡고 싶어 하면서도 그가 돌아갈 자리를 완전히 빼앗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가족과 재회하는 모습을 밖에서 지켜보는 피터에게 서술자는 다른 아이들이 누리지 못하는 수많은 환희가 있지만, 그 기쁨에서는 영원히 제외되어 있다고 말한다.
피터는 돌아갈 자리를 웬디에게 돌려주고 자신은 밖에 남는다. 끝없이 모험할 자유를 지킨 아이가 가족의 재회를 창밖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성장하지 않는다는 소원을 처음과 다르게 느끼게 한다.
같은 창문으로 다음 세대가 찾아온다
마지막 장에서 웬디는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딸 제인을 낳는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찾아온 피터는 웬디가 성장했다는 사실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그는 웬디와 함께 갈 수 없게 되자 제인을 네버랜드로 데려가고, 훗날에는 제인의 딸 마거릿도 같은 모험을 이어간다.

피터가 제인에게 바라는 역할도 웬디에게 부탁했던 것과 같다. 제인은 자신이 피터의 엄마가 되겠다고 하고, 다음 세대의 소녀가 다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반복에서 피터는 한 사람과 함께 변하기보다 익숙한 역할을 맡아줄 새 사람을 만난다.
웬디 쪽에서 보면 제인과 마거릿은 반복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생긴 딸과 손녀다. 자신이 겪은 모험을 딸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점도 달라졌다. 피터는 네버랜드를 계속 살아가고, 웬디는 네버랜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자라지 않은 피터는 여전히 창문으로 날아온다. 그러나 그를 맞는 사람은 바뀐다. 웬디와의 이별은 한 번의 작별로 끝나지 않고, 같은 창문 앞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사는 모습으로 오래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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