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괴물의 이름은 무엇일까, 그가 복수를 선택한 이유
이름 대신 어떤 특징으로만 불릴 때, 그 말에 담기지 않는 나머지 모습은 어디로 갈까.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을 읽다 보면 무서운 외모보다 먼저, 누구에게도 이름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게는 고유한 이름이 없다.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체를 만든 과학자 빅터의 성이다. 원작에서 빅터는 자신이 만든 존재를 피조물, 악마, 괴물 같은 말로 부르지만 이름을 지어주지는 않는다. 피조물이 자신을 아담에 빗대는 장면도 있지만, ‘아담’이 그의 이름이라는 뜻은 아니다.
피조물이 복수를 시작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있다. 사람들의 생활을 숨어서 지켜보며 친절을 배우고, 자신도 가족과 친구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시간이다. 창조자의 방치와 사람들의 거절이 쌓이면서 그 기대는 증오로 바뀐다. 그가 어떤 존재였고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함께 읽어야 이름 없는 괴물의 이야기가 보인다.
메리 셸리가 쓴 1818년 초판본을 기준으로 살펴본다. 작품의 주요 사건과 결말이 포함되어 있다.
프랑켄슈타인 괴물의 이름이 비어 있는 자리
빅터는 약 2년 동안 생명을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하지만 피조물이 눈을 뜨는 순간, 자신이 완성한 모습에 공포와 혐오를 느끼고 방을 뛰쳐나간다. 침대 곁으로 찾아온 피조물이 손을 내밀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지만, 빅터는 다시 달아난다.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프랑켄슈타인』 1818년판 원문
생명을 만들기 전 빅터는 새로운 존재가 자신을 축복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정작 그 존재가 살아나자 돌보거나 가르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소설은 이름을 붙이지 않은 이유를 따로 설명하지 않지만, 이름 없음과 버려짐을 나란히 놓는다. 피조물에게 돌아온 것은 가족의 자리가 아니라 빅터가 던지는 혐오의 호칭들이다.
사람을 숨어서 배우던 시간
빅터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은 숲과 마을을 떠돌며 불과 음식, 추위 같은 것을 혼자 익힌다. 처음 들어간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돌을 던진다. 이후 드 라세 가족의 오두막에 붙은 작은 공간에 숨어 살며 그들의 생활을 관찰한다.
이때 피조물은 인간의 말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가난한 가족이 서로 먹을 것을 양보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음식을 가져가면 그들이 더 굶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에는 저장된 음식을 훔치는 대신 숲에서 열매와 뿌리를 구하고, 밤마다 장작을 모아 몰래 가져다놓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실낙원』도 읽으며 사랑과 덕, 역사와 사회를 배운다.
이 장면들은 피조물이 처음부터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폭력을 이해하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고, 가족이 서로 돌보는 모습에 감동했으며, 자신도 그 관계에 들어가기를 바랐다. 외형은 완성된 성인의 몸에 가깝지만 정서와 사회적 경험은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피조물은 드 라세 가족을 보호자이자 친구처럼 여기게 된다. 그러나 가족은 밤마다 장작을 가져다주는 이가 누구인지 모른다. 혼자 키운 친밀감과 실제로 주고받은 관계 사이에 간격이 있다. 피조물이 모습을 드러낼 때, 오랫동안 쌓아온 기대도 그 간격 앞에 놓인다.

드 라세 가족의 거절이 결정적인 이유
피조물은 눈이 보이지 않는 노인 드 라세가 외모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먼저 대화를 시도한다. 노인은 낯선 방문자의 말을 들으며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펠릭스와 아가타, 사피가 돌아오자 상황이 달라진다. 두 여성은 쓰러지거나 달아나고, 펠릭스는 피조물을 바닥에 내던진 뒤 막대기로 때린다.
피조물은 반격할 힘이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는 펠릭스를 해치지 않고 도망친다. 처음에는 자신이 너무 성급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대화할 가능성도 떠올린다. 그러나 가족이 오두막을 완전히 떠난 사실을 확인한 뒤 분노하고, 결국 그 집에 불을 지른다.
윌리엄에게 향한 복수
드 라세 가족과 헤어진 뒤에도 피조물에게 다른 선택의 흔적은 남아 있다. 강에 빠진 소녀를 구했을 때, 소녀와 함께 있던 남자는 상황을 확인하지 않고 피조물에게 총을 쏜다. 이 사건은 선의로 행동해도 공격받는다는 그의 절망을 더 크게 만든다.
그러나 빅터의 어린 동생 윌리엄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피조물이 분명히 선택하고 행동한다. 처음에는 어린아이라면 외모에 대한 편견이 적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윌리엄이 자신이 프랑켄슈타인 가문의 아이라고 밝히자 복수의 대상으로 삼아 목을 조른다. 이어 윌리엄이 지니고 있던 초상화를 쥐스틴의 옷에 넣어, 죄가 없는 사람이 살인범으로 몰리게 만든다.
관계를 원했던 존재가 이제는 다른 사람의 관계를 끊어놓는다. 윌리엄의 죽음과 쥐스틴에게 씌운 누명은 자신이 겪은 거절을 빅터에게 되돌려주려는 행동이다. 독자는 피조물의 사정을 알지만, 그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두 사람의 죽음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동반자를 만들어달라는 요구는 정당했을까
피조물은 빅터에게 자신과 같은 여성 피조물을 만들어주면 인간 사회에서 멀리 떠나겠다고 제안한다. 아무도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같은 처지의 존재라면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다. 빅터는 처음에는 요구를 받아들여 두 번째 생명체를 만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완성 직전, 빅터는 새 피조물이 약속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두 존재가 자손을 낳을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그는 창밖에서 지켜보던 첫 피조물 앞에서 아직 살아나지 않은 몸을 파괴한다. 그러자 피조물은 빅터가 결혼하는 날 찾아가겠다고 위협하고, 이후 빅터의 친구 클레르발과 신부 엘리자베스를 살해한다.
피조물은 같은 처지의 존재라면 자신을 받아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새로 태어날 존재에게도 그를 거절할 의사가 있을 수 있다. 이 장면을 동의의 문제로 읽으면 요구의 빈틈이 보인다. 빅터는 자신을 사랑할 생명을 상상했고, 피조물은 자신을 사랑해줄 동반자를 원한다. 두 인물 모두 상대가 독립된 뜻을 가질 때 생기는 어려움 앞에 선다.
북극에 남은 이름 없는 존재
책임은 서로 다른 자리에 남는다. 생명을 만들고 버린 책임은 빅터에게, 외모만 보고 공격한 책임은 그 사람들에게, 살인과 누명을 선택한 책임은 피조물에게 있다. 소설이 피조물의 고통을 들려주는 것은 이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결말에서 빅터는 피조물을 뒤쫓아 북극까지 갔다가 죽는다. 피조물은 그의 시신 앞에 나타나 자신이 저지른 일을 후회하고, 스스로 생을 끝내겠다는 뜻을 밝힌 뒤 어둠 속으로 떠난다. 이제 그를 만든 사람조차 없다. 처음부터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존재는 마지막에도 누군가의 곁에 머물지 못한다.

괴물에게 이름이 없다는 답을 알고 다시 읽으면, 이름 대신 그에게 건네진 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말들 사이에는 장작을 나르던 손과 윌리엄을 해친 손, 가족에게 다가가고 싶던 마음과 가족을 잃게 만들려던 마음이 함께 있다. 메리 셸리는 그 시간을 모두 들려주고도 끝내 그에게 고유한 이름을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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