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는 왜 흰 토끼를 따라갔을까? 원작 속 호기심과 성급함
잠깐만 보려던 것이 어느새 오후를 가져가는 때가 있다. 처음부터 멀리 갈 생각은 없었는데, 궁금한 것이 하나씩 더 생긴다. 앨리스가 흰 토끼를 따라가는 장면에도 그런 가벼운 출발이 있다.
앨리스가 흰 토끼를 따라간 직접적인 이유는 호기심이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첫 장에서 앨리스는 토끼가 조끼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는 것을 보고 일어난다. 말하는 토끼만큼이나 이상한 장면인데, 앨리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그 주머니와 시계였다.
굴에 들어간 까닭과 들어가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궁금해서 따라갔지만, 다시 나올 방법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첫 장에는 새로운 것을 알고 싶은 마음과 눈앞의 일에 빠져 다음 조건을 놓치는 성급함이 함께 들어 있다. 원작 1장
앨리스는 말하는 토끼보다 시계에 놀랐다
이야기 처음의 앨리스는 강둑에서 언니와 함께 앉아 있다. 언니가 읽는 책에는 그림도 대화도 없다. 날은 덥고 졸리다. 데이지꽃으로 화환을 만들면 재미있겠지만, 꽃을 따러 일어날 만큼 가치가 있을지 생각하던 참이다.
그 옆으로 흰 토끼가 달려가며 늦겠다는 말을 한다. 앨리스는 그 순간 이를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서술자는 나중에 돌이켜보면 놀랐어야 할 일이지만,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느꼈다고 덧붙인다. 우리가 기대하는 놀라움의 순서부터 살짝 비껴가는 셈이다.
토끼가 시계를 꺼내자 반응이 바뀐다. 앨리스는 조끼 주머니를 달고 다니거나 그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는 토끼를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토끼가 갑자기 눈앞의 수수께끼가 된다.
나는 이 순서가 첫 장의 재미를 만든다고 느낀다. 현실의 기준으로는 말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그런데 앨리스에게는 작고 구체적인 물건 하나가 더 강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말하지?’보다 ‘토끼에게 주머니와 시계가 있다고?’가 먼저 몸을 움직인 것이다. 작가는 호기심을 추상적인 성격 설명으로 소개하는 대신, 아이가 유난히 눈여겨본 대상을 보여준다.
지루함도 이 장면을 받쳐준다. 책에는 자신이 원하는 그림과 대화가 없었는데, 눈앞에는 움직이며 이상한 일을 벌이는 존재가 나타났다. 고요하던 오후와 달려가는 토끼의 대비가 크다. 다만 지루함은 배경이고, 원작이 추격의 순간에 직접 붙인 동기는 호기심이다. 이 둘을 나누어 읽으면 ‘현실이 싫어서 도망쳤다’는 설명까지 서둘러 덧붙이지 않게 된다.
따라가는 동안 비어 있었던 계획
앨리스는 토끼가 울타리 아래의 큰 굴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따른다. 굴은 잠시 터널처럼 이어지다가 갑자기 아래로 꺾인다. 앨리스는 멈출 틈도 없이 떨어진다.
여기에는 낯선 곳을 끝까지 탐험하겠다는 긴 결심이 없다. 토끼를 놓치지 않는 일이 먼저였고, 어떻게 돌아올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용기라는 말만으로 읽으면 이 빈틈이 사라진다. 위험을 따져본 뒤 감수하는 행동과, 위험을 따질 시간이 없었던 행동은 다르다.
그런데 떨어지는 동안에는 다른 면이 드러난다. 앨리스는 주위를 둘러보다 마멀레이드 병을 집어 든다. 빈 병을 아래로 놓으면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지나가는 찬장 안에 넣으려 한다. 자신의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데 아래에 있을지 모를 사람을 생각한다.
이 작은 행동 덕분에 앨리스는 그저 무모한 아이로 납작해지지 않는다. 눈앞의 궁금함 때문에 앞뒤를 놓치기도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타인을 떠올릴 수 있다. 한 사람의 성격을 설명하려면 첫 선택뿐 아니라 그다음 행동도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문을 통과하려면, 몸만 작아져서는 안 된다
굴 아래에서 앨리스의 관심은 작은 문 너머 정원으로 옮겨간다. 꽃과 분수가 있는 곳에 들어가고 싶지만 몸이 너무 크다. 이때 탁자 위에 놓인 병을 발견한다.
앨리스는 이번에는 곧바로 마시지 않는다. 독약이라는 표시가 있는지 먼저 살핀다. 굴에 들어갈 때는 놓쳤던 확인을 여기서는 하는 셈이다. 그래서 앨리스가 언제나 생각 없이 행동한다는 설명도 첫 장 전체와는 맞지 않는다.
병의 내용물을 마신 뒤 몸이 작아지자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문을 열 열쇠를 높은 유리 탁자 위에 놓고 온 것이다. 몸의 크기는 맞아졌지만 손이 열쇠에 닿지 않는다. 독자는 ‘열쇠부터 챙겼어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 장면이 실감 나는 이유는, 원하는 변화 하나에 집중하다 다른 조건을 놓치는 일이 낯설지 않아서다.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도 문이 열리는 시간을 확인하지 않거나, 필요한 물건을 챙겨놓고 정작 들고 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이는 앨리스를 어떤 심리 유형으로 진단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장면 속 실수를 일상의 경험과 나란히 놓아본 해석이다.
호기심은 답을 듣는 순간에도 끝나지 않는다
앨리스의 궁금함은 토끼를 따라가는 첫 장 이후에도 이어진다. 5장에서 애벌레가 누구냐고 묻자, 앨리스는 아침의 자신은 알았지만 그동안 여러 번 달라졌다고 설명한다. 답을 쉽게 내놓을 수 없는 질문 앞에서도 대화를 계속한다. 원작 5장
첫 장의 움직임과 이 대화를 함께 보면 호기심에도 서로 다른 얼굴이 있다. 처음에는 이상한 것을 더 가까이 보고 싶어서 달린다. 나중에는 자신이 겪는 일을 설명하고 싶어서 묻고 답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관심과 잠시 멈춰 생각하는 관심이 한 인물 안에 놓인다.
앨리스는 처음부터 성장할 모험을 골라 떠난 아이가 아니다. 시계를 꺼내는 토끼가 궁금했을 뿐이다. 그 마음이 이야기를 열었고, 돌아올 길을 생각하지 않은 빈틈이 모험을 예상 밖으로 키웠다. 다시 첫 장을 읽으면 커다란 토끼굴보다 작은 조끼 주머니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앨리스의 오후를 바꾼 것은 거기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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